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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반지하와 옥탑방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상을 받은 후 한국 영화의 위상이 한층 높아졌습니다. 한국 영화가 갑자기 세계 속으로 등장한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한국 영화와 드라마는 이미 폭넓은 인기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아시아를 비롯한 각지에서의 한국 드라마와 영화의 인기는 상상 이상입니다. 한국 영화의 수준과 재미가 이미 할리우드의 수준을 넘었다는 평가도 있을 정도입니다.     전 세계적인 방송의 배급이 시작되고, 코로나19라는 위기와 맞물리면서 한국 드라마와 영화의 인기는 그야말로 천정부지입니다. 서구 시장에 그 시작을 알린 작품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말에도 있었지만, 자막을 통해서 영화를 감상하는 게 익숙하지 않은 미국인에게 한국 영화와 드라마가 다가가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벽을 봉준호 감독이 깨뜨린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영화 기생충에서는 재미있는 번역이 많아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서울대학교를 옥스퍼드로 번역한다든지 하는 장면들입니다. ‘반지하’와 ‘짜파구리’도 번역이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중에서도 반지하 방에 사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서구인에게는 충격이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반지하는 한국에서 서민 생활의 상징적인 장소이기도 합니다. 기생충이라는 영화는 반지하 방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반지하라는 말을 문화적으로 번역한다면 수많은 함의가 있을 겁니다.   반지하는 첫째, 햇빛이 잘 들지 않는 곳입니다. 늦게 해가 뜨고 빨리 지는 어두운 곳이기도 합니다. 어두움이라는 상징이 나올 수 있습니다. 둘째, 반지하는 사생활의 보장이 되지 않는 곳입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쳐다보고, 들여다봅니다. 때로는 노골적으로 엿보기도 하는 곳입니다. 쳐다보는 게 싫어서 하루 종일 커튼을 치기도 합니다. 더 어두워지는 곳이지요. 셋째, 비가 오면 비가 새고, 먼지가 들이닥치는 위험하고 지저분한 곳이기도 합니다. 거기에 사는 사람에게는 더없이 안락해 보이기도 하지만 언제든 인생의 종말로 갈 수도 있는 곳입니다.   반지하라는 공간은 가상의 공간이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도 서울의 수많은 사람이 반지하에 살고 있습니다. 해마다 장마철이 되고, 태풍이 불면 반지하는 늘 아슬아슬한 장소입니다.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수해가 발생하면 늘 제일 먼저 비추어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평상시에는 제일 늦게 보여주던 곳인데 말입니다. 반지하라는 공간을 이해하지 못하면 한국 주거의 빈부 차이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반지하와 반대되는 공간이면서 낭만적인 공간처럼 나오는 곳도 있습니다. 바로 옥탑방입니다. 옥상에 있는 작은 방에서 사는 모습이 드라마와 영화에 자주 등장합니다. 시야가 탁 트이고, 화려한 네온사인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죠. 종종 친구들과 모여 고기를 구워 먹기도 하고, 술을 마시기도 하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옥탑방은 때로 비가 새고, 춥고 더운 곳이고, 매우 저렴한 주거공간입니다. 반지하를 옥상으로 올려놓은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지하가 가족의 공간이라면 옥탑방은 가난한 청년의 공간입니다. 서양의 펜트하우스와는 그야말로 거리가 멉니다. 천지 차이의 공간입니다. 그래도 옥탑방이 한국인에게 낭만으로 기억되는 것은 다행입니다.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보면서 한국의 주거문화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밝은 곳을 의도적으로 보여주는 장면도 많습니다. 부잣집의 건물은 주로 갤러리인 경우가 많습니다. 화려한 건축물이나 넓은 마당의 저택이 많이 나오지만 실제로 한국에서 찾아보기 쉬운 곳은 아닙니다. 하지만 반지하와 옥탑방은 찾으려고만 마음을 먹으면 여기저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한국의 어두운 측면도 문화입니다. 어두운 부분, 어려운 부분에 대한 이해도 문화 이해에 중요한 부분입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반지하 옥탑방 반지하가 가족 한국 영화 한국 드라마

2024-11-10

“재난 자체보다 극단상황의 사람들에 포커스”…8일 개봉 ‘콘크리트 유토피아’ 엄태화 감독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 장편영화 부분 한국영화 출품작으로 선정된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감독 엄태화는 새로운 장르와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으로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선두주자로의 부상했다.     12월 8일 LA를 포함해 북미에서 개봉 예정인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대지진에 휩싸인 서울의 폐허 속 살아남은 아파트 한 채에서 펼쳐지는 독특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엄태화 감독 특유의 감정적인 깊이와 긴장감 있는 연출로 주목받고 있다.     이 작품은 인간존중과 생존이라는 주제가 엇갈리는 상황에서 황궁아파트라는 단일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생존자들의 사투를 통해 감독의 섬세한 감정 표현과 배우들과의 호흡이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엄태화 감독의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이제까지의 상상을 뛰어넘는 독창성과 예측불가능한 전개로 관객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길 것으로 예상되며, 국제무대에서의 한국 영화의 입지를 견고히 다질 것으로 기대된다.     -대지진이 왜 일어났는지, 어떻게 일어났는지 알려주지 않는 것이 흥미롭다.     “재난 상황 자체보다는 재난 이후의 극단적인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에 포커스를 맞추고 싶었다. 재난을 소비하기보다는 재난 상황에 남겨진 사람들의 공포와 개연성을 만들어주는 장치로 쓰고 싶었다. 그래서 재난 자체에 집중하지 않았던 것 같다.”   -엄태화에게 ‘집’이란 어떤 공간인가.   “아무 생각과 걱정 없이 쉴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집은 가족들과 쉴 수 있는 공간보다 자산으로서의 가치가 더 강조될 때가 있다. 그럴 때 쓸쓸함이 느껴진다.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은 집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좋겠다.”     -황궁 아파트는 유토피아와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제목을 ‘콘크리트 유토피아’라고 지은 이유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아파트란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접하게 된 박해천 작가의 인문 서적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따온 것이다. 아파트의 역사를 정치, 사회, 문화로 나누어 다루고 있는 이 책을 보다가 영화와 너무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콘크리트는 아파트를 상징하고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은 이상향을 상징한다. 생존이 너무 중요해서 남을 생각할 겨를 없이 나와 내 가족만 보면서 사는 그런 삶이 과연 유토피아일까 라는 의문점에서 생겨난 아이러니를 표현하고 싶었다.”     -영화를 보다 보면 손에서 손으로 이어지는 손에 관한 클로즈업 샷이 많이 보이더라. 어떤 의미로 이런 샷을 만들어냈는지.   “손이라는 것이 결국에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손으로 누군가를 돕기도 하고 손으로 누군가를 죽이거나 해칠 수도 있다. 배우의 얼굴로 감정을 보여줄 때도 있지만 다 보여주지 않고 손으로만 표현했을 때 관객들이 더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국제장편부문 한국 영화 대표 출품작에 선정된 것이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너무 영광스럽고 부담스럽기도 하다. 좋은 결과가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이런 경험 자체가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최대한 즐기면서 할 수 있는 건 다 하고 있다.”   -북미의 반응은? 미국 관객은 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 같은가.     “영화를 처음 만들 때 한국적인 정서를 담아 한국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결국 이 영화의 핵심을 파고들어가 보면 인간존중과 생존이라는 가치가 충돌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주거문제는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며, 이런 상황은 어디에나 일어날 수 있다. 다들 그런 점을 공감하면서 보는 것 같다.”     -이 영화가 북미 관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무엇인지.   “4인 가족이 영화를 보고 각자 다른 캐릭터에 이입해서 격렬한 토론을 했다는 리뷰를 봤다. 각자의 입장이 다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른 인물에게 이입한 것 같다. 또 어떤 리뷰에서는 명화(박보영)가 답답하다고 비난하다가 집에 와서 자려고 보니 그렇게 명화를 비난했던 자기가 너무 이기적인 것이 아닌가 무서워졌다고 했다. 이처럼 어떤 인물에게 이입해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답을 내려 주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영화인 것이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만약 본인이 재난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영화 시나리오를 쓰면서도 그렇고 아직도 계속해서 고민이 되고 쉽게 답을 내리기가 어렵다. 그래도 조금 더 가까운 사람이 누굴까라고 생각하면 앞에 나서진 못해도 약자가 도움을 요청하면 도움을 주는 도균(김도윤)에게 가까울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명화가 가게 된 아파트는 90도로 기울어져 있다. 의도한 것인가.     “수직적인 아파트가 수평으로 기울어지면서 아파트에 따라 나뉘었던 계급이 중요해지지 않은 상황을 보여주고 싶었다.”   -주민들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장면에서 지옥 불에서 춤추는 것 같은 봉준호 감독의 ‘마더’의 관광버스 장면이 떠오르더라. 영향이 있었나.     “직접적으로 오마주한 장면은 아니지만, 봉준호 감독님의 영화를 보면서 공부했고 그래서 그런 것들이 무의식에 깔린 것 같다.”   -황궁 세력이 무너진 이유가 무엇일까. 명화? 외부인들? 주민 간의 갈등? 영탁의 거짓말?   “누구에게 이입해서 보느냐에 따라서 해석이 다른 것 같다. 다만, 명화 때문이라고 하는 의견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 외부인들을 내쫓자고 선택하는 시점부터 무너진 것 같다. 당장에 춥고 배고픈 공포감에 사로잡혀 함께 살 방법을 강구하지 못했던 이기심이 원인이라고 본다.”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기를 바라는가.     “질문을 던지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 시대가 바뀌어도 이러한 보편적인 문제는 계속된다고 생각한다. 그때마다 어느 가치가 더 중요할까에 답은 내리지 못할지언정 질문을 하는 것 자체로도 조금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하은 기자 chung.haeun@koreadaily.com인터뷰 인문서적콘크리트 유토피아 부분 한국영화 한국 영화

2023-12-01

이병헌 인터뷰 "캐릭터에 완벽하게 녹아들려고 발버둥쳤다"

이병헌 주연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감독 엄태화)’가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 부문 한국영화 출품작으로 선정돼 한국 영화의 제작 능력과 예술성을 세계에 알릴 기회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시상식은 오는 12월 18일부터 예비 후보자 투표를 시작하며 21일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공식 후보는 내년 1월 11~16일 투표를 거쳐 발표된다. 시상식은 3월 10일 열린다.   12월 8일 LA를 포함해 북미에서 개봉 예정인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대지진으로 모든 게 무너진 세상에 홀로 살아남은 서민 아파트 황궁을 배경으로 다양한 신념과 욕망을 가진 인물들의 갈등을 그려낸다. 극 중에서 이병헌이 연기한 김영탁은 위험으로부터 아파트를 지켜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리더다. 집에 대한 그의 집념은 단순한 안전과 안식의 욕구를 넘어선다. 이병헌은 김영탁이라는 다면적인 캐릭터를 통해 삶의 의미와 희생, 이상에 대한 내면의 갈등을 탁월한 연기로 그려낸다. 광기와 진지함을 혼합한 그의 연기는 관객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길 것으로 기대된다.   작품을 잘 고르는 것으로 유명하다. 선택 기준이 있는가. 이 작품을 선택할 때 기준은.   “작품을 선택하는 신념이나 기준은 없다.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느껴지는 느낌이나 재미를 따라가는 편이다. 그것이 가장 큰 기준점인 것 같다. 일단 내가 재밌는 영화를 선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영화도 시대에 따라 유행하는 장르가 다르다. 멜로가 유행하면 10년 동안 브라운관이 멜로영화로 꽉 채워진다. 그런데, 이 영화는 정말 오랜만에 만난 블랙코미디였다. 시나리오를 읽고 ‘내가 블랙코미디를 정말 좋아했었구나’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영탁을 연기하기 위해 신경 썼던 것이 있는지.   “영탁이 처해있는 상황이라던가 영탁의 감정 상태와 환경에 젖어들기 위해 4~5개월을 몰입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작품이 끝나기 전까지 캐릭터에 완벽하게 녹아들 수 있도록 발버둥쳤다.”   그렇다면 영화를 위해 일상생활에서도 노력했던 것이 있는가.   “영화를 촬영하는 도중에 가족들을 만나고 다른 일도 보고 친구들과 웃고 농담하는 순간에도 마음 한쪽에 영탁이 남아있었다. 무의식적으로 작품과 캐릭터를 항상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이러한 재난 상황에 처한다면 어떻게 행동했을 것 같은지.     “무대 인사를 다닐 때 이 주제로 배우들과 감독님과 대화를 많이 나눴다. 그런데 나는 그때도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실제 그 상황 속에 들어가서 살아보고 겪어보지 않으면 대답할 수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계속 과연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스스로 묻게 됐다.”   영화 속 영탁에게 ‘집’이란 무엇이라 생각하나.   “한국은 ‘내 집 마련’의 꿈이 다른 나라보다 두드러지는 것 같다. 모든 가장의 꿈은 가족들을 위해 집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탁에게도 ‘집’이란 가장의 의무와 꿈이라 생각한다.”   그럼 이병헌에게 ‘집’이란.   “휴식, 나에게 집은 휴식이다. 집은 마음 편하게 쉬고 싶은 공간이어야 한다.”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이 있다면.   “윤수일의 ‘아파트’라는 노래를 부르다가 과거로 플래시백 해서 영탁의 모든 비밀이 관객들에게 다 알려지는 시퀀스가 가장 힘있게 느껴졌다. 굉장히 임팩트 있는 장면이라 좋았다.”   토론토 영화제에서 상영됐는데 관객들 반응은 어땠나.   “타인종의 반응을 토론토 영화제에서 처음 봤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좋아서 뿌듯했다. 사실 ‘이 영화를 이해하지 못하면 어떡하나’라는 걱정이 있었다. 집을 지키고자 하는 감정은 모두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정하은 기자 chung.haeun@koreadaily.com지진 캐릭터 토론토 영화제 부문 한국영화 한국 영화

2023-11-14

한국영화의 미학·대중성 다진 기념비적 시대

1960년대는 전쟁으로 인해 모든 것이 무너진 절망의 시기였지만, 희망을 갈구하는 대중들의 욕망이 분출된 변혁의 시기이기도 했다. 영화는 1960년대 한국 대중문화에서 가장 사랑받는 장르였다. 이 시기에 ‘작가주의 감독군’들에 의해 이른바 한국형 모더니즘의 틀이 형성되기 시작하면서 미학적으로 뛰어난 면모를 갖춘 기념비적인 영화들이 대거 발표됐다. 영화법이 제정·시행됐고 연간 100~200편의 영화가 상영됐다. 관객수도 1961년 5800만명에서 1969년 1억7300만 명으로 세 배 가까이 증가했다.     ▶오발탄(Aimless Bullet, 유현목 감독, 1961년)   전후 재건 한국사회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1961년 상영 금지를 받았지만 가장 위대한 한국 영화 중 하나로 널리 칭송받고 있는 유현목의 대표작. 전쟁이 지나간 한국사회를 배경으로 해방촌에서 살아남은 가족의 암울한 생존기를 다룬다. 정신이상자 어머니, 영양실조에 걸린 만삭의 아내, 상이군인 동생 그리고 양공주가 된 여동생이 등장하는 스토리를 누아르 형식으로 그렸다. 두 형제의 비극적 관계, 증오와 공포로 산산이 부서진 한 가족과 국가의 초상화. 한국영화의 진정한 영상시대는 ‘오발탄’ 이후라는 평가가 나왔다. 김진규, 최무룡, 문정숙, 윤일봉 출연.     ▶여판사(A Woman Judge, 홍은원 감독, 1962년)   한국의 두 번째 여성 감독 홍은원의 데뷔작. 사법고시에 성공, 최초의 여성 판사가 된 진숙(문정숙)은, 여판사라는 아내의 사회적 지위에 열등감을 느끼는 남편 규식(김석훈)과 이에 편승하여 며느리를 오해하는 계모 시어머니, 그리고 시누이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그러나 한 가정의 아내와 며느리로서, 그리고 판사의 임무에 충실하던 중, 살인사건에 연루된 시어머니의 변론을 맡아 무죄판결을 끌어낸다. 1961년 한국 최초의 여성 판사 황윤석의 의문의 죽음에서 영감을 얻었다. 여성들의 지위 향상에 기여했다는 평. 분실되었다가 50년 만에 세상 빛을 보게 됐다.   ▶맨발의 청춘(The Barefooted Young, 김기덕 감독, 1964년)   음악다방과 댄스홀, 트위스트 등 이전 세대의 라이프스타일과 확연히 구별되는 청년 문화를 반영한 새로운 영화 장르 ‘청춘영화’의 대표작. 부유한 대사의 딸 요안나(엄앵란)와 사랑에 빠진 사창가의 폭력배 청년(신성일)의 이야기를 실패한 사랑, 낭만적 사랑, 비극적 사랑의 신화로 그려냈다. 극심한 계급 분열, 불안한 세대 갈등으로 거칠어지는 청년문화를 강하게 비판한 작품. 검열에 의해 금지될 뻔했던 이 영화는 당시로서는 획기할 만한 25만 관객을 동원, 최고 흥행을 이루며 주연 배우 신성일과 엄앵란을 60년대의 대중 스타 커플로 떠오르게 한다. 최희준의 주제가도 크게 히트했다.     ▶갯마을(The Seashore Village, 김수용 감독, 1965년)     오영수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문예 영화 대표작. 문예 영화의 흥행 가능성을 입증한 최초의 영화로 전후 한국의 분열된 정체성에 대해 깊이 탐구한다. 해순(고은아)은 남편과 함께 갯마을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으나 어느 날 만선의 꿈을 안고 바다로 나간 남편이 폭풍을 만나 죽게 된다. 해순에게 관심을 보이던 떠돌이 상수(신영균)를 그녀는 끝내 거절하지 못한다. 두 사람의 관계는 곧 온 마을에 소문이 나고 상수는 해순을 데리고 갯마을을 떠난다. 해순의 아름다움을 탐하는 사내들을 피해 첩첩산중으로 숨어 들어가지만 그들의 삶은 점점 힘겨워지기만 한다.     ▶황혼의 검객(A Swordsman in the Twilight, 정창화 감독, 1967년)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 빌’에 영향을 주었던 홍콩영화 ‘죽음의 다섯손가락’(King Boxer, 1972)을 연출한 정창화 감독의 독특한 한국식 검술 영화. 한국의 풍경과 궁궐 건축, 짧고도 치명적인 검의 만남을 다룬다. 조선시대 민비와 장희빈의 알력을 배경으로 무법 마을에 홀로 등장한 검객 김태원(남궁원)은 건달 오기룡(허장강)에 의해 아내(윤정희)와 딸이 처단되자 음모 세력에게 복수할 날만을 손꼽는다. 곡예적인 홍콩 무협과는 대조적으로 한복을 입은 검객들이 대결하는 우아하고 절제된 액션 시퀀스들과 치밀한 편집이 돋보인다.   ▶안개(Mist, 김수용 감독, 1967년)     김수용 감독의 공간과 시간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짜임새 있고 세련미 넘치는 연출로 60년대 한국 영화의 정점을 찍은 작품으로 평가된다. 한국의 비극적 현대사에 상처받은 인간의 내면을 영화적 풍경으로 그려낸 ‘안개’는 김승옥의 모더니스트 소설 ‘무진 기행’이 원작이다. 장인 회사에서 상무로 있는 회사원(신성일)이 어린 시절의 고향을 방문하고 그곳에서 일상의 제약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음악 교사(윤정희)를 만나 욕정을 불사른다. 그러나 전무로 승진됐다는 아내의 전보를 받고 실리를 좇아 서울로 떠난다. 윤정희의 대담한 베드신이 화제가 됐다. 이봉조의 색소폰 연주를 따라 안개 속에서 인간의 건조하고 암울한 내면세계와 조우한다.     ▶휴일(A Day Off, 이만희 감독, 1968년)     1968년에 제작되었으나 심의를 통과하지 못해 37년 동안 빛을 보지 못했다. 겨울의 끝자락의 어느 일요일. 교회 종소리와 함께 빈털터리 허욱(신성일)은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지연(전지연)의 낙태 수술을 위해 친구의 돈을 훔친다. 지연은 병에 들고 실의에 빠진 허욱은싸롱에서 만난 여자와 주점을 전전한다. 수술 도중 지연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녀와의 행복한 한때를 회상하며 거리를 내달리는 허욱, 씁쓸한 비관론에도 불구하고 시적 표현에 담긴 사랑과 60년대 한국사회의 부조리를 청년의 시점에서 고발한 작품으로 인정받았다.     ▶내시(Eunuch, 신상옥 감독, 1968년)   감각적 에로티시즘과 폭력이 주를 이룬다. 여성에 대한 억압이 극에 달했던 당시의 사회구조에 대한 비판이 날카롭다. 궁궐 내에서 벌어지는 대립 상황이 숨 막히는 긴장감을 불러온다. 궁궐의 권력 다툼과 불운한 로맨스를 다룬 신상옥의 사극. 조선 시대 엄격한 유교사회에서 욕구를 억누르고 살아야 하는 왕비와 궁녀들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고심한다. 노출 없이 노골적으로 성을 묘사한 신상옥의 연출 스타일이 60년대의 작품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파격적이다. 신성일, 윤정희, 박노식, 남궁원, 도금봉 출연.  김정 영화평론가 ckkim22@gmailcom한국영화 기념비 한국 영화 여성 감독 한국 대중문화

2023-09-08

2023 밴쿠버국제영화제 한국 영화는 몇 편?

 밴쿠버국제영화제가 올해도 다양한 국가의 다양한 영화가 출품됐는데, 한국 영화도 6편이 선보일 예정이다.   밴쿠버국제영화제(Vancouver International Film Festival, VIFF) 주최측은 6일 기자회견을 통해 2023년도 VIFF에 대해 소개하는 자리를 가졌다. 이는 2019년 이후 코로나19로 제한적으로 진행되던 영화제가 올해 처음으로 정상적으로 영화관에서 직접 진행하게 된다.   올해 약 240편의 장편과 단편 영화가 영화제 기간에 10개 상영관에서 상영된다.     한국 영화는 총 6편이 출품됐다. 우선 올해 첫 상영을 한 신작은 곽은미 감독의 믿을 수 있는 사람들(A Tour Guide), 허진호 감독의 보통의 가족(A Normal Family), 최우진 감독의 단편영화 정동(Jeong-Dong), 김주연 감독의 단편영화 가장 보통의 하루(An Ordinary Day) 등이다.   1999년에 개봉했던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Peppermint Candy), 2000년에 개봉했던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Joint Security Area)도 상영할 예정이다.   한국 영화의 상영시간과 극장을 보면, A Tour Guide는 10월 2일 오후 6시 30분, 4일 오후 4시 15분에 인터내셔날 빌리지 10관(International Village 10)에서, A Normal Family은 10월 2일 오후 9시 밴쿠버플레이하우스(Vancouver Playhouse), 4일 오후 3시 30분에 파크 극장(Park Theatre)에서, Jeong-Dong은 10월 4일 오후 6시, 6일 오후 12시 15분에 인터내셔날 빌리지 8관(International Village 8)에서 국제단편(International Shorts)들과,  An Ordinary Day는 10월 2일 오후 6시, 4일 오후 12시 45분에 인터내셔날 빌리지 8관(International Village 8)에서 다른 단편 영화들과 함께 상영된다.   Peppermint Candy은 10월 3일 오후 8시 45분 7일 오후 1시 15분에 시네마테크(The Cinematheque), Joint Security Area는 9월 30일 오후 9시 15분 시네마테크(The Cinematheque), 10월 8일 오전 11시에 밴시티 극장(Vancity Theatre)에서 각각 상영된다.   7일 오후 12시부터 판매가 시작된 영화제 티켓은 성인 1회는 18달러, 시니어는 16달러, 그리고 학생/청소년은 14달러 등이다. 6개 묶음이나, 학생 묶음, 시니어 묶음 티켓도 판매한다. 티켓 정보는 https://viff.org/ticket-info에서 확인할 수 있다.   모든 영화상영일정과 내용, 해당 영화 티켓 구매 등은 VIFF 웹사이트의 What's On 페이지에서 할 수 있다. 표영태 기자밴쿠버국제영화제 한국 한국 영화 단편영화 정동 영화제 기간

2023-09-07

“한국 영화만의 색깔 담긴 날렵한 시도 많아졌으면”

“한국에서보다 관객 반응이 더 좋네요.”   ‘2023 뉴욕아시안영화제: 한국 영화 특별전’의 마지막 날인 지난달 30일 링컨센터는 영화 〈킬링 로맨스〉를 관람하기 위해 극장을 찾은 관객들로 북적였다.     한국 영화 광팬이라는 60대 미국인 노부부는 땡볕 아래에서 30분 동안 줄을 서기도 했고, 기차 타고 2시간 거리를 달려온 한국인 유학생들도 있었다. Q&A 세션에서 배우 이선균은 “우리 영화가 한국에서는 호불호가 갈렸는데, 뉴욕 관객 반응은 극호인 것 같다”고 전했다.     개막작으로 선정된 〈킬링 로맨스〉는, 섬나라 재벌 ‘조나단(이선균)’과 사랑에 빠져 은퇴를 선언한 톱스타 ‘여래(이하늬)’가 결혼 후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팬클럽 출신 사수생 ‘범우(공명)’를 만나 복귀를 위한 작전을 모의하는 스토리의 코미디 영화다.     이날 진행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여래’ 역을 맡은 배우 이하늬는 “세상에 없는 화법으로 스토리를 풀어나간 영화다. 또 코미디라는 장르 특성상 만국 공통으로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개막작으로 선정되지 않았나 싶다”고 밝혔다.     여래와 범우의 조력자 영찬 역을 맡은 배우 배유람도 “저희 영화 감독님(이원석 감독)도 미국 유학 생활을 오래 하셔서 이쪽 분들과 유머 코드가 잘 통했던 것 같다. 그 정도로 통통 튀는 영화”라고 소개했다.     또 이하늬는 “우리 영화는 ‘열심히 해도 안 되는 사람들’의 얘기다. 제가 맡은 여래도 배우로서 인기는 얻었지만 연기력으로 혹평받고, 결혼 후 가정폭력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지만 잘 안되는 캐릭터다. 뉴욕·뉴저지의 한인들도 이방인으로 살면서 큰 장벽들이 많았을 거라 생각한다. 그런 부분에서 공감과 위로를 얻어가실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번 영화제에서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하기도 한 이하늬는 세계 무대에서 한국 영화의 방향성을 묻는 질문에 “거침없는 행보와 시도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그는 “전 세계 영화계에서 다양성이 사라져가는 것 같다.     집에서도 영화를 볼 수 있는 시대에 모두가 블록버스터 영화만 영화관에서 볼 것인가에 대해 영화인들도 고민이 많다.     상업영화도 좋지만, 마이너들의 얘기를 다룬 다양한 영화들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영화제에 초청된 독립영화 〈익스트림 페스티벌〉의 김재화 배우와 김홍기 감독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다양성이 존중받는 영화계’를 강조하며 “K-개성이 묻어나는, 우리만의 색깔과 문화가 담긴 날렵한 시도를 한 영화들이 많아졌으면 한다”고 전했다.   글·사진=윤지혜 기자한국 영화 뉴욕아시안영화제 선정작 한국 영화 한국인 유학생들

2023-08-01

60년대 한국 생활 스크린으로…한국 근대 영화 상영전 개최

한국 근대영화를 통해 1960년대 한국의 시대상과 생활상을 스크린으로 엿볼 수 있는 한국 근대 영화 상영전이 열린다.     LA 한국문화원(원장 정상원)은 15일과 22일 양일 오후 3시부터 LA한국문화원 ‘한국 근대 영화 상영전: 한국영화의 황금기’ 행사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15일 오후 3시 ‘마부’(감독 강대진, 1961년), 오후 6시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감독 신상옥, 1961년)에 이어 22일 오후 3시 ‘하녀’(감독 김기영, 1960년), 오후 6시 ‘오발탄’(감독 유현목, 1960년) 등 주옥 같은 한국 근대영화 4편이 상영된다.     이번 행사는 현재 LA카운티미술관(LACMA)에서 성황리에 전시 중인 ‘한국 근대미술전: 사이의 공간’ 행사를 계기로 미국 현지인들이 한국의 근대 시기를 영화를 통해 심층 탐미해 보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LA한국문화원, LA 카운티 미술관(LACMA), 한국영상자료원 공동주최로 마련했다.   주최 측은 “이번 상영작들은 한국영상자료원이 선정한 한국영화 100선 중 10위권 안에 들어가는 대작들로 엄선했다”며 “1960년대 ‘한국영화의 황금기’를 이끌며 가장 왕성한 활동을 펼친 김기영, 신상옥, 유현목, 강대진 등 거장 감독들의 대표작들을 만나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밝혔다.     한국전쟁 직후 어려운 제작 여건 속에서도 잇달아 대작을 선보이며 한국 영화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대종상 시상식이 시작됐고, ‘마부’, ‘성춘향’ 등 작품이 베를린, 베니스영화제에 진출하기도 했다.   정상원 LA 한국문화원장은 “우수한 한국 고전 영화의 밑바탕이 있었기에  한국영화와 드라마의 눈부신 성과가 가능했다”며 “흑백 고전 영화의 추억에 흠뻑 빠져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상영전은 무료이지만, 좌석이 150석으로 제한되어 영화마다 홈페이지(www.kccla.org)에서 사전 예약이 필요하다.   ▶주소: 5505 Wilshire Blvd, LA   ▶문의: (323) 936-7141  이은영 기자한국 스크린 한국 근대영화 한국영화 100선 한국 영화

2022-10-09

밴쿠버 | 한국 영화 '비상선언' 2022년 북미 개봉 예정

 WELL GO USA ENTERTAINMENT는 내년에 한국의 항공 재난 영화인 '비상선언(Emergency Declaration)’ 북미에 개봉한다고 밝혔다.       비상선언은 '우아한 세계', '관상'등을 연출한 한재림의 5번째 장편 영화로, '더 킹' 이후 약 4년 만의 복귀작으로 지난 여름 칸 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받기도 하였다.       이 영화에는 흥행 메이커인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 등 정상급 배우들이 출연한다.         시놉시스를 보면 베테랑 형사 인호(송강호)는 비행기 테러 공격에 대한 어떤 남자의 제보를 받고 조사하던 중, 용의자가 KI501기에 탑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비행기 공포증에도 불구하고 재혁(이병헌)은 딸의 건강을 위해 하와이에 가기로 결심한다. 공항에서 주위를 서성거리는, 위협적인 말투의 수상한 남자 때문에 정신이 없다.       KI501기는 인천 공항을 출발하여 하와이로 향하지만, 곧 한 남자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망하고 이에 공포와 혼란의 상황은 기내 뿐만 아니라 지상에도 삽시간에 퍼져버린다.       국토교통부 장관 숙희(전도연)는 이 소식을 듣고 대테러 대책본부를 꾸려 긴급 대책회의를 소집해 KI501기의 착륙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아직 한국에서도 개봉 전이다. 북미 개봉은 한국 개봉 이후인 내년에 상영을 하게 될 예정이다.         표영태 기자비상선언 밴쿠버 한국 개봉 북미 개봉 한국 영화

2021-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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